발해의 건국
🔍 사건 개요
발해(渤海)는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大祚榮)이 중국 동북 지역(현재의 만주)과 한반도 북부 지역에 세운 국가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며 강력한 정치·군사 체제를 구축하고, 당(唐)과 대립하면서도 교류를 유지하는 외교적 균형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926년 거란(요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 건국의 구조적 원인
1) 정치적 배경: 고구려의 멸망과 당나라의 통치
668년,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후 당나라는 고구려 지역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직할 지배를 시도했으나,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의 지배를 피해 여러 집단이 이동하였고, 그중 대조영이 이끄는 집단이 발해를 건국하게 됩니다.
2) 사회경제적 배경: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
고구려 멸망 후, 많은 유민들이 당나라의 지배를 거부하고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말갈족과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말갈족은 유목과 농경을 병행하는 종족으로, 군사적 역량이 강했습니다. 대조영은 이들과 연합하여 독립국을 세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3) 국제 정세: 당과 돌궐의 대립
당나라와 돌궐(突厥)의 대립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이 고구려 부흥운동을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못한 것도 발해 건국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 직접적 계기: 천문령 전투
대조영은 696년 거란의 반란(거란의 이진충의 난)으로 인해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당나라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698년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하고 독립적인 정권을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대조영은 발해의 초대 왕(고왕)으로 즉위하였고, 발해의 건국을 공식화했습니다.
📅 발해 건국 타임라인
668년: 고구려 멸망 → 유민들의 이동
696년: 거란의 반란 발생 → 당나라의 혼란
698년: 천문령 전투 승리 → 발해 건국 선언
713년: 당나라가 발해를 ‘홀한주 도독부’로 책봉 (발해의 실질적 독립 유지)
발해의 멸망
🌱 멸망의 구조적 원인
1) 정치적 갈등과 왕권 약화
발해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지만, 후기에 들어 왕위 계승 문제로 내부 분열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발해 후기에는 귀족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심해져 국력이 약화되었습니다.
2) 사회경제적 문제: 지방 통제력 약화
발해는 다민족 국가였으며, 넓은 영토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도 상경 용천부에서 지방까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 세력들이 독립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또한 농업 생산력 저하와 빈부 격차 문제도 발해의 약화를 초래했습니다.
3) 국제 정세: 거란의 부상
10세기 초, 거란족이 요나라(遼)를 건국하면서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발해는 거란과 적대 관계를 유지했으나, 요나라가 점차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발해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 직접적 계기: 요나라의 침공
925년,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발해를 침공하였습니다. 발해는 수도 상경 용천부까지 함락당하며, 이듬해(926년)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 발해 멸망 타임라인
900년경: 내부 권력 투쟁 격화 → 국력 약화
916년: 거란, 요나라 건국 → 동북아시아 패권 변화
925년: 요나라의 발해 침공
926년: 발해 멸망
발해 멸망 이후의 영향
A. 단기적 변화
발해 유민의 이동과 발해 부흥운동
발해 멸망 후, 일부 유민들은 고려로 망명하였고, 일부는 요나라에 복속되었습니다.
일부 발해 귀족들은 요나라의 통치에 협력하며 새로운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적 변화: 발해 후신국의 등장
발해 유민 일부는 동란국(東丹國)과 정안국(定安國)을 세우며 독립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요나라에 흡수되었습니다.
B. 장기적 영향
발해-고려 계승 논쟁
고려는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발해를 계승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는 후대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만주 지역의 지배권 변화
발해 멸망 후, 만주 지역은 요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금나라, 원나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 속에 편입되었습니다.
발해의 역사적 의의
발해는 고구려 계승 국가로서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고려 이후에도 발해의 유산은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에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역사 해석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 발해 멸망 이후 영향
고려로 유입된 발해 유민 → 고려 문화·제도에 영향
요나라의 만주 지배 → 이후 금·원으로 이어지는 흐름 형성
한·중 역사 해석의 쟁점 → 발해의 정체성 논쟁 지속
결론
발해는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하여 세운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점차 쇠퇴하다가 요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발해의 유산은 이후 고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국가입니다.